박항서 감독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조국과 베트남 팬, 둘 다 실망 안 시키련다”

베트남 축구를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4강에 올려놓으며 우리나라와의 준결승전을 앞둔 ‘베트남 축구영웅’ 박항서(59) 감독의 각오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베트남은 지난 29일 열린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3:1로 패하며 금메달을 향한 꿈을 접어야 했다.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대표팀 덕분에 베트남 현지는 경기일마다 많은 국민들이 도심에 모여 응원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박항서 매직’에 베트남 전역이 들썩였다.

끈끈한 조직력의 산물 ‘질식수비’로 승승장구
친근한 이미지에 특유의 소신…열성팬 적지 않아


박항서 감독은 올해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일궈 내며 ‘박항서 매직’을 과시했다. 그랬던 그가 베트남을 사상 첫 아시안게임 준결승으로 이끌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베트남은 D조 조별리그에서 3전 전승을 기록해 1위로 토너먼트에 올라 바레인, 시리아를 차례로 꺾었다. 조별리그에서는 강호 일본까지 제압했다.

5경기를 모두 무실점 경기로 마치며 ‘질식수비’라는 말도 만들어 냈다. 베트남의 장점은 끈끈한 팀워크였다.

당초 베트남 방송들은 TV 중계권조차 사지 않았었다. 하지만 베트남 국가대표의 선전이 이어지자 뒤늦게 중계권을 구매했다.

베트남의 4강 진출로 베트남 전역이 들썩였다. 베트남 국영매체 VN익스프레스 영어판은 “베트남이 해냈다. 베트남이 시리아를 꺾고 축구 역사를 다시 썼다”고 대서특필했다.

개최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도 베트남의 선전에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박 감독 지휘봉 잡은 뒤
새 역사 쓰는 베트남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에서 영웅, 나아가 신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박항서 매직’, ‘쌀딩크’(쌀국수와 히딩크를 합친 말) 등 다양한 수식어가 유행할 정도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축구 약체로 평가받던 나라다.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국 211개국 중 랭킹 102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법처럼 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달라졌다. 경기력뿐 아니라 결과로 말해주고 있다.

박 감독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U-23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어쩌면 쫓기듯 한국을 떠나 급한 대로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박 감독의 선수 시절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1978년 제20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하는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된 이후 1979년 당시 대표팀 2진인 충무에 선발됐으며 1진인 화랑팀을 오가며 활동했다.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에서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했으며 곧바로 육군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에 입단해 1985년 K리그 우승과 1986년 K리그 준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은퇴한 박 감독은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코치로 있다가 1997년 수원 삼성으로 옮겼다. 2000년 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가 된 그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코치로 거스 히딩크를 보좌하며 4강 신화를 썼다. 푸근한 외모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가교 노릇을 훌륭히 해냈다.

하지만 2002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감독을 맡아 박지성, 이영표, 이운재 등 월드컵 태극전사들을 데리고도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후 프로축구 K리그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와 실업 내셔널리그 창원시청 등에서 감독을 역임했지만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거센 항의로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아 비판도 들었다. 그러나 특유의 소신을 좋아하는 팬들도 적잖았다.

박항서 감독 <뉴시스>
챔피언십·아시안게임
‘승리 DNA’ 심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과의 궁합은 좋았다. 감독이 된 지 3개월 만에 치른 AFC U-23 챔피언십에서 사상 첫 결승 진출을 이끌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지는 것에 익숙했던 베트남 축구에 승리 DNA를 심어준 것이다.

동남아시아 국가가 AFC 주관 대륙대회에서 결승에 오른 것은 베트남이 처음이었다. 아시아 축구 전체로 보면 쇼킹한 수준이다. 그동안 아시아 축구에서는 중동 혹은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박항서 매직’은 계속됐다. 박 감독의 지도력을 바탕으로 베트남이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할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했지만 냉정하게 4강 후보로 꼽은 이는 많지 않다.

박항서호의 아시안게임 선전은 베트남을 넘어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한국이 한일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 아시아 축구계가 한국을 성원하던 장면과 닮았다.

지난해 10월 11일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에 취임한 박 감독은 “나를 선택한 베트남 축구에 제가 가진 축구인생의 모든 지식과 철학 그리고 열정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지향하는 축구는 조직력을 극대화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축구, 기동력 있는 축구, 점유율 높은 축구다. 이를 통해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동남아시아 정상권 팀은 물론 아시아 정상권 팀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 양국 간의 우호증진과 발전에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많은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축구 외교관
스포츠에서 외교까지


박항서 감독은 지난 1월 27일 축구 변방인 베트남을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준우승으로 이끌어 베트남 정부로부터 3급 노동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축전을 통해 “부임 3개월여 만에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아시아 정상권으로 끌어올린 박항서 감독의 노고에 우리 국민도 기뻐하고 있다”고 축하한 바 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베트남이 한결 가까운 친구가 된 것 같아 기쁘다”며 “박 감독의 활약과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선전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베트남 순방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지난 3월 22일 문 대통령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훈련장을 찾아 박 감독과 선수들을 만났다.

이날 문 대통령은 지난해까지 K리그 강원FC에서 뛰었던 쯔엉과 AFC U-23 챔피언십에서 5골을 뽑으며 결승행을 이끈 공격수 응우웬 꽝 하이, ‘거미손’ 골키퍼 부이 띠엔 중 등과 인사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박 감독에게 결승전 당시 폭설이 내렸던 상황을 언급하며 “눈 내리는 것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다. 베트남 선수들이 눈에 대한 경험이 없을 텐데”라며 “아마 그 폭설만 아니었으면 우승했을 것 같은데, 아쉽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이에 박 감독은 “최선을 다했으니까요”라며 후회 없다고 답했고, 문 대통령은 “예, 또 기회가 있으니까요”라고 격려했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박 감독에게 “정말 자랑스럽다”고 격려했다. 이날 대표팀 훈련장 주변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분의 베트남 국빈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베트남의 한 방송국은 문 대통령 내외의 방문행사를 생중계 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당시 훈련장 입구에는 박 감독을 비롯해 부 득 담 베트남 부총리,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문 대통령 내외를 마중 나왔다. 30여 명의 베트남 유소년 선수들은 꽃다발을 들고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선수단과 인사를 마친 문 대통령은 베트남 부총리와 양국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교환했다. 부총리로부터 베트남 유니폼을 건네받은 문 대통령 그 자리에서 상의 탈의 후 유니폼을 착용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시축 이벤트 전에 박 감독의 요구에 따라 무릎과 발목을 푸는 준비운동을 따라 했다. 박 감독이 호루라기를 불자 문 대통령 내외는 동시에 시축을 했다. 문 대통령이 찬 공은 운동장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부총리와 한국 축구대표팀, 베트남 대표팀의 사인이 모두 새겨진 사인볼을 교환한 뒤 기념사진 촬영을 끝으로 박 감독 격려행사를 마쳤다.

‘박항서 매직’이 한국과 베트남 외교에까지 훈훈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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