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20년 장기집권’과 ‘강한 당대표’를 내세운 이해찬 의원이 신임 당대표에 올랐다. 당초 신친문을 대표하는 김진표 의원이 막판 역전을 노려봤지만 ‘세대교체’를 내세운 송영길 의원에게도 뒤진 3위로 처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7선의 이 대표가 당선된데에는 추미애 당 대표를 비롯해,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종걸 의원 등의 물밑지원이 큰 힘이 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류 속 비주류로 문재인 정부의 눈치를 보며 숨죽여 지냈던 인사들이다. 이해찬 체제가 들어서면서 문재인 정부 집권 1기를 좌지우지한 운동권 및 시민단체 출신 등 신친문 세력과 국정운영을 둘러싼 치열한 주도권 다툼도 할 수 있게 됐다.

- ‘20년 장기집권’, ‘강한 대표’, 이해찬 상왕정치 개막
- 文 1기 국정 주도 운동권·시민단체 등 신친문 패권 ‘견제’
<뉴시스>
8.25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원 및 지지자들의 선택은 이해찬 의원이었다. 친노·친문 좌장 격인 이 신임 당 대표는 한 손에 ‘강한 당대표론’ 또 다른 손에는 ‘20년 장기집권론’을 내세워 당심과 민심에서 상대 후보를 압도했다. 7선에 ‘실세총리’, ‘당대표’를 지낸 이 대표이기에 청와대와 야당에 끌려다니는 여당보다는 대등한 관계를 기대하는 표심도 깔려 있다는 게 당내외 중론이다.

당·정·청 한 손에…상왕(上王)으로 ‘등극’

‘이해찬 대세론’은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친문 인사인 박주민, 박광온, 김해영 최고는 선거과정에서 이해찬 대표와 호의적인 관계 설정을 통해 무난하게 당선됐다. 설훈 최고는 노골적으로 이 대표를 지지했다. 여성 몫으로 당선된 남인순 최고 역시 마찬가지다. 당대표가 임명하는 지명직 최고위원 2명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지도부 회의에 참석하는 홍영표 원내대표와 김태년 정책위의장 역시 이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있을 당시 총리실 산하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일했다. 또한 2012년 당대표 시절에는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도 지냈다. 8월 말로 정책위의장 임기가 다 돼 물러나야 했지만 이 대표가 유임시킨 김태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이해찬맨’이다.

최소한 당 지도부 내에서 이 대표에게 ‘각’을 세우거나 ‘흔들’ 수 있는 인물이 없다. 그렇다고 당직을 맡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이 이 대표의 리더십에 반발할 수도 없다.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이 대표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여당 내에서는 ‘제왕적 당대표’가 탄생한 셈이다.

당내에서 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에서도 이 대표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에 올랐지만 이해찬 대표는 ‘실세 총리’로서 위세를 떨친 바 있다. 당대표 선거 당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문 대통령을 ‘문 실장’이라 불러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이 대표는 ‘인간적 친근감의 표시’라고 받아쳤다.

이낙연 총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표는 취임하면서 정례 당정청 회의를 요청했고 청와대는 수용했다. 문 대통령과 이 총리의 경우 매주 월요일 주례 오찬 회동을 해왔지만 당·정·청 협의회는 부정기적으로 가끔 열리는 수준이었다.

또한 8월 31일부터 1박 2일로 진행되는 민주당 워크숍에 대부분의 국무위원이 참석해 달라진 당대표의 위상을 반영했다. 9월 1일에는 이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의원 전원 청와대 오찬에 참석해 이 대표의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가 됐다. 이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해 온 국정 운영에 여당의 목소리가 크게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청와대와 정부가 이 대표를 배려하는 것은 이번 개각 발표 시점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도 여당내 돌았다. 문 대통령은 8월 30일 18개 부처 중 5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발표했다. 그런데 정기국회 앞두고 5명의 부처장관을 교체한 것은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때늦은 감이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개각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진 배경이 이 대표가 당대표 출마선언을 늦게 한 데다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신임 당대표와 상의 후 발표하는 게 낫다는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다.

개각 늦어진 배경...이해찬 신임 대표 ‘배려’?

김진표 후보나 송영길 후보중 한 명이 당대표 당선이 유력했다면 개각 발표는 진작에 났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와 청와대가 당대표에 당선되기전 부터 ‘배려’ 수준이 아니라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일었다. 사실상 이 대표가 당정청을 넘어 전권을 행사할 ‘상왕’이 될 공산이 높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편 이 대표를 선거 중에 직간접적으로 지지 선언한 주 세력이 주류 내 비주류 인사들이 다수라는 점에서 ‘친문 주류 전성시대’가 끝나고 ‘친문 비주류 전성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 1기를 이끌어 온 인사들을 보면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 친노와 86 운동권과 시민단체 세력이 주축을 이뤘다. 청와대 비서실과 정책실, 안보실의 비서관급 이상 참모 중 운동권 출신이나 시민단체 출신은 전체 64명 중 23명에 달하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필두로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핵심 참모 다수가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이다.

이로 인해 신친문을 대표하는 김진표 의원의 막판 역전극 시나리오가 나온 배경이 됐다.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3철’중의 한 명인 전해철 의원이 사실상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친문 대표 인사인 최재성, 황희 의원이 김 의원을 지지했다. 또한 친문 핵심들의 모임인 ‘부엉이 모임’의 다수 의원들이 김 의원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하게 부산이 지역구인 전재수 의원만 이 대표 진영에 섰다.

이뿐만 아니라 문대통령의 온라인 팬클럽 역시 김 의원을 지지했다. 그러나 성적표는 신친문, 주류 진영이 지지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한 3위였다. 오히려 호남이 고향으로 2년전부터 당대표 선거를 위해 물밑작업을 한 송영길 의원이 2위를 차지해 당내 기반을 다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운동권 출신인 송 의원을 신친문으로 분류되는 86운동권·시민단체 그룹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도 아니였다. 친문 주류 세력의 패배로 볼 수 있다.

친문 주류 세력의 패배는 곧 친문임에도 비주류로 숨죽여 지낸 인사들이 이 대표를 등에 업고 주류 세력으로 도약을 꿈꾸게 만들고 있다. 이번 전대에서 이 대표를 직접적으로 지원한 그룹은 추미애 전 대표 진영,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진영, 이재명 경기도지사 진영, 이종걸 의원 등이 있다.

공통점은 당내 비주류로 존재해 세력은 없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친문화’한 점이다. 여기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미투 운동’으로 차기 대권 가도에서 멀어지면서 그를 지지했던 인사들이 친문 주류가 밀던 김 의원이 아닌 이 대표를 간접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당내에서 주류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친문 패권주의’에 치였던 인사들이 이 대표로 총결집하면서 무난하게 승리를 이끌었다. 여기에는 박범계, 표창원, 이재정, 손혜원 의원을 비롯해 정청래, 최민희, 김현 전 의원 등도 가세했다. 정청래 전 의원의 경우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20대 총선에서 친문 주류에 밀려 ‘컷오프’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한편 대권을 꿈꾸는 추미애, 김부겸, 이재명 3인이 모두 TK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추 전 대표는 고향이 대구이고 김 장관은 경북 상주, 이 지사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TK 패싱’논란이 일 정도로 홀대를 받은 곳이 이 지역이다. 실제로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지역 배치를 봐도 부산·울산·경남을 연고로 둔 인사는 19명으로 30%에 육박한 반면 대구·경북 출신 비서관은 4명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 1기 정부 내각을 보면 더 처참하다. TK 출신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유일하다. 8월 30일 발표한 문재인 정부 2기를 이끌 5명의 장관 내정자 중에서 정경두 국방부장관 내정자가 경남 진주 출신일뿐 TK출신 장관 내정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대표는 지난 8월 29일 당대표에 오른 후 첫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경북 구미에서 가졌다. 경북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이자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일하게 민주당 기초자치단체장이 배출된 지역이다. 문재인 정부의 ‘TK 패싱론’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구미를 경북 공략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제 우리당이 전국적 국민정당으로 대구·경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첫 번째로 찾아왔다”며 “구미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지역 전체의 문제로 대구·경북 지역을 특별 관리 지역으로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이 대표의 동진 정책 뒤에는 ‘20년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 잠룡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사실상 불참하거나 출마했어도 컷오프됐다는 특징이 있다. 결국 잠룡군은 이해찬 후보와 김진표 후보로 나뉘어 차기 대권을 두고 대리전을 펼쳐야 했다.

대표적인 인사가 바로 김부겸 장관과 김두관 의원이다. 김 장관은 이 대표를 지지했고 김 의원은 김진표 의원을 도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대표가 대구·경북을 첫 번째 지방일정으로 잡은 것은 다목적 카드로 그중 하나가 ‘김부겸 대망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해찬 바람 타고 ‘김부겸 대망론’ 급부상

김 장관은 이번 전대에서 당대표 출마를 접으면서 사실상 이 대표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지지단체 대표를 이해찬 당대표 선거사무실에 파견시켜 대놓고 지원했다. 무엇보다 고향은 경북 상주지만 지난 총선에서 TK 심장인 대구에 출마해 당선되는 기염을 통했다. TK 대망론의 선두 자리에 있는 인사가 바로 김 장관이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과 사이가 나쁘지도 않다. 김 장관 대망론의 아킬레스건은 세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대표가 당 대표를 하면서 인선과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해 세력을 모아 줄 경우 ‘김부겸 대망론’은 막강해질 수 있다. 주류 진영에서 누구를 지지한다고 해도 해볼 만 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바야흐로 문재인 정부 2기를 맞이해 이해찬 당 대표체제의 등장으로 주류 속 비주류로 살았던 인사들이 친문 주류 진영과 국정운영을 견제하고 차기 권력을 두고 팽팽하게 맞설 수 있게 됐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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