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유엔총회로 이어지며 숨 가쁘게 진행됐던 북핵 외교전이 마무리됐다. 핵심 의제는 단연 ‘종전 선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 모두 국제사회를 향해 종전선언을 화두로 제시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 변화에 주목하면서도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는 데 주력했다. 한반도 종전선언은 지난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합의한 사안이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전제 조건이 있다. 북한의 비핵화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약속과 달리 비핵화에 한 발짝도 들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전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만을 부각하면서 국제사회의 화답을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속도 조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북한은 조바심을 내고 한국은 서두르며 미국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긋고 있는 ‘종전선언’, 그 속에 담긴 ‘불편한 진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 평양공동선언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에 담긴 ‘불편한 진실’
- 文 “종전선언=취소 가능, 대북 제재=강화하면 그만, 비핵화=불가역적” 실상은 ‘정반대’


지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여덟 개 항의 주요 내용에 합의하고 ‘평양공동선언’을 채택 발표했다.

남북정상이 채택한 평양공동선언의 핵심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 방안을 비롯해 한반도 전쟁 위협 제거를 위한 군사합의서, 남북경제협력, 이산가족문제 해결, 다양한 분야 교류협력, 김정은 국방위원장 서울 방문 등이다.

김정은이 직접 비핵화 언급?
“기존 발언과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은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수십 년 세월 지속해 온 대결과 적대의 역사를 끝내기 위한 군사합의를 채택하였으며,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적 땅으로 적극 만들어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말했다. 다수 언론은 이를 두고 “김정은이 직접 비핵화를 언급했다”며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것이고 한반도에 ‘평화’가 도래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실상을 파헤쳐 보면 이는 아직 ‘허황된 꿈’이라는 지적이다. 당장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지난 4월 판문점 선언과 6월 북미정상회담 때 발언과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즉 ‘평양공동선언’ 이후 김 위원장의 구두 약속은 동어반복일 뿐이고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비핵화에 국한해 보자면 평양공동선언은 기존 1,2차 문재인-김정은 회담에서 진전된 게 없다는 냉정한 평가다”라며 “무서운 점은 결국 북한이 ‘비핵화로 포장된 핵보유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국민들은 이제 인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관계자가 말한 ‘불편한 진실’은 다수의 전문가들의 발언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당장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고영환 전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은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의견을 내놨다.

태영호 전 공사는 글에서 “북한은 종전 선언부터 평화협정 체결까지의 과도기 동안 ‘핵무기를 가진 나라의 군대’가 한국에 주둔하면 북한도 핵무기를 그대로 갖고 있겠다는 의지를 간접 시사했다”고 지적했다.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북한의 전직 고위 외교관들 역시 “김정은 측이 이번 평양공동선언에 있는 비핵화 관련 문구를 한국이나 국제사회와는 다르게 해석할 것”이라며 “평양공동선언 속에 숨은 북한 측의 의도를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즉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한반도 비핵화’가 향후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았으며, 주한미군을 내보내야 한다는 북한의 숨은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반대로 김정은이 대북특사단이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종전 선언과 주한미군 철수는 관련이 없다”고 밝힌 것 또한 “주한미군을 인정할 테니 우리가 가진 핵무기도 인정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주한미군(핵 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은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이란 평양공동선에 위배된다는 논리로 북의 핵 보유를 정당화할 것이고 이를 원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라는 게 김 위원장의 ‘숨겨진 노림수’인 것이다.

트럼프 “종전선언 시기상조,
대북 제재 지속” 노림수는?


이를 모를 리 없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선결 조건으로 종전 선언 전까지 대북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만약 선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북한과 중국이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를 줄기차게 요구할 것이며, 또 이로 인해 비핵화 이행도 그만큼 늦춰질 것이라는 우려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김 위원장이 약속한 ‘영변 핵시설 영구 폐쇄’와 ‘유관 국가 전문가 참관하의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발사대 영구 폐기’를 구체적인 비핵화 행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북한은 이미 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어서 노후화된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인 영변 핵시설은 없어도 그만이다”라며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더 위협적인 이동식 발사대로 무장하고 있다.

구체적인 비핵화 행동은 이런 것이 아니라 핵탄두, 핵시설, 핵물질에 대한 신고 검증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그 시간표라도 제시해야 구체적 비핵화 행동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시간에 쫓기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얘기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이 ‘2021년 1월’을 비핵화 완성 시한으로 밝혔지만 지난 9월 26일 트럼프 대통령은 “3년이 걸려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 회담 이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말했다”며 “나는 ‘세상 모든 시간이 나에게 있다. 서두를 필요 없다’고 답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두고 ‘종전선언 카드’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전략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했다.

이에 북미 간 중재자 혹은 촉진자로서 우리 정부는 북미에 한 발씩 양보할 것을 요구하며 미국의 우려를 달래는 중재안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0일 ‘대국민 보고’에서 종전선언이 마치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유엔사 지위 해체, 주한미군 철수 압박”은 평화협정에 의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평양정상회담 중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치적 선언인 종전선언에 대해 “똑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취소 가능한 종전 선언?
전문가 “물리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밥 코커 상원외교위원장(공화·테네시)은 26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종전 선언은 이른 시일 내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이에 도달할 방법은 분명히 있다”며 “종전 선언을 위해 요구되는 것들이 실제로 이뤄지는 것을 목격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팀 케인(민주·버지니아) 상원의원도 종전 선언이 협상 의제라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지금은 미국이 북한에 무언가를 제공할 시기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진보 성향의 한 학자 역시 “미국이 바보가 아닌 이상 종전선언 내용을 모르겠나. 문재인 대통령이 가서 종전 선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해 부족도 있지만 정말 해주기 싫은 것이다”며 “미국의 비핵화 속도 조절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문제를 수단화해서 자신의 국익을 극대화하고, 미중 관계에서 카드로 쓰려는 목적이 크다. (비핵화가) 자신들의 속도에 맞춰서 가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카드 하나 잃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2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종전 선언과 관련,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 대북(對北) 제재에 대해서는 “북한이 속일 경우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반면,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와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 등에 대해서는 ‘불가역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정반대다.

종전 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종전 선언도 담는 내용에 따라 평화협정에 준하는 높은 수준이 될 수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소개한 정부의 종전선언안은 ▶1항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는 상징적 의미 ▶2항 남·북 및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을 포함해 4개 항으로 돼 있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등이 2항에 해당할 수 있다.

또 정치적 선언인 것은 맞지만, 주요국 정상들의 합의는 그 자체로 강제성을 갖는다. 미 당국자들도 비공식 석상에서 “다시 선전포고를 하지 않으면 종전 선언을 번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제재도 마찬가지다. 이미 중·러는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제재에 ‘구멍’을 내고 있다. 다시 대북 제재를 강화하려고 하면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을 가진 이들 나라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 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면서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려는 취지를 이해하더라도 사실 관계까지 왜곡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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